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한 명제는 새로움이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밤늦게 포스팅을 하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궁금하지만 답은 쉽지가 않다. 분명한건 우주는 넓고 넓고 넓어서 우리의 개념안에 집어 쑤셔넣기도 벅찰 정도다. 그리고 그 속에, 그것도 지구에만 지적 생명체가 있다는건 전우주의 부동산적인 낭비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영화 콘택트는 차분하고 중도적으로, 때로는 이성과 감성의 중심에서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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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가 대립한다. 앨리는 철저히 증명할 수 있는 이성적인 과학자이고, 팔머는 신념을 중시한다. 첨예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정치적이지 않다. 우리 자신이 믿는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앨리가 믿는것은 수치와 통계로 증명 되는 과학이다. 하지만 죽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슈퍼컴퓨터 수천대가 있다해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해석할 수 는 없다. 확고했던 앨리의 과학에 대한,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의존도는 파머에 의해서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한다.
주인공 앨리역의 조디 포스터. 이 영화 콘택트에서도 배운여자라는 느낌을 팍팍 내주신다.
파머는 종교적 인물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이성적인 캐릭터다. 신을 믿음과 동시에 과학을 인정한다. 그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그릇된 신념이 아닌, 그가 중시하는 인간 본연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오컴의 면도날1이 언급되는 씬이 2번 나온다. 앨리가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한 얘기를 위해 처음 언급하지만, 두번째로 언급되는 순간은 다름아닌 앨리 자신이 받게되는 청문회이다. 그때는 오히려 앨리 자신이 오컴의 면도날에서 부정적인, 즉 짧지 않고 긴 가설쪽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앨리가 신념에 차보인다. 실질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는 자신의 짧지만 긴 우주여행을 관철시킨다.
If it is just us... 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블랙스완에서 자주 언급하듯이 인간은 거시적인 모든 상황과 사건을 협소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공식에 대입시키려 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성공적일 수 는 있지만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과학이든 종교든 맹신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어느한쪽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세상사가 특정한 공식이나 이론등으로 쉽게 설명되기는 어렵다. 결국 앨리가 그토록 갈망한 우주에 대한 진실도 그녀의 신념이 뒷받침 해준다. 그녀가 그렇게 대단한 경험과 깨닫음을 얻을 수 있었던것도 베가성에서 보내준 복잡한 공식보다는, 앨리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있다 없다로 대표되는 소모적인 논쟁들은 여전히 많다. 그런 논쟁에 지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 콘택트를 보고서 조용히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SF장르이지만 화려한 볼거리는 후반부, 웜홀을 통과하고 베가성으로 진입하는 순간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SF영화는 현란한 특수효과보다 가상의 사실을 전재로한, 그 현실속에서 얻는 인간 자체의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 아닌가 싶다.)
-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또는 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 (Principle of economy)라고도 한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 (William of Ockham)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문은 오컴의 저서에 등장하는 말. "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 "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 예를 들어,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는 나무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나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히 그을린 다음 자신이 그을렸다는 흔적을 완전히 없앤 것일 수도 있다.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 본다면, 나무가 그을린 것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벼락에 맞았다는 쪽이 조건을 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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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외계인은 친구일까? 적일까?
외계인은 친구일까? 적일까?외계인에 대한 이러한 물음은 사실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외계인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일 뿐 그것은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 외계인은 어떤 존재일까?화성에서 생명체가 발견되었다.그런데 이 생명체는 바퀴벌래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우리는 이것을 외계인이라고 하지 않는다.외계생명체라고 부른다.우리에게 외계인이란 인간이상의 지적 생명체를 의미한다.인류보다 광년이 앞선 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며칠전에 생각나서 또 한번 봤던 영화 '콘택트'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이런쪽으로도 관심이 많거든요 ^^
잘 보고 갑니다.
볼때마다 새로운 영화 같아요.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도 재밌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은 외계인 영화이면서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외계인을 외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나아가서 자아의 문제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글 하나 트랙백했습니다.
결국은 인간과 인간 관계의 교류에 대한 메세지가 컸죠. 저도 오징어 형상을한 기괴한 형태의 외계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굉장히 맘에 듭니다.